Winter


51.
백기는 날이 춥든 덥든 항상 청아를 안은 채로 자고 싶어할 거야. 물론 청아도 그의 품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새벽에도 후덥지근한 여름이 되면, 자는 중 저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와 등을 돌리곤 해. 그 뒤척임을 발견한 백기는 그대로 뒤에서 청아를 끌어안겠지.
#梅花 그에 반해 태자라면··· 덥다며 멀찍이 그를 밀어낸 공주를 다시 끌어와 안을 거야. 불만이 가득한 공주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볼을 톡톡치며 웃겠지. 공주가 잠들어야 할 곳은 평생 이곳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듯 품 안의 공주를 더욱 꽉 안는 태자.

52.
각각 여름과 겨울에 태어난 탓일까··· 백기는 체온이 높은 편이고, 청아는 매우 낮은 편이야. 청아가 한 아이를 구하려다 납치 당해 홀로 고요히 아픔을 견디던 날, 뒤늦게 도착한 백기는 차디찬 청아의 몸을 안아들곤 그녀가 이미 숨이 끊긴 이후라고 오해할지도 몰라. 마치 시체··· 같다고 말이야. 이 날 이후, 백기는 청아의 온 몸을 끌어 안아주는 게 마치 자신의 숙명처럼 느껴져. 백기가 매일 청아를 품에 넣고 자려는 이유도, 그녀의 차가운 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이질적인 둘의 체온이 결국 서로를 더욱 단단히 연결해주는 거야.

53.
#梅花 언제부터인지 공주를 놀리는 데에 맛들린 태자. 붉어지는 볼도, 꾹 다문 입술도, 태자의 눈에는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을 거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놀림 당해도, 공주는 제 위치 상 태자에게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그래서 공주가 선택한 방법은, 태자의 귀엔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반박하기. 태자의 말 끝마다 ‘퍽이나. 그럴리가. 아닌데.’ 등의 말로 혼자 조용히 분을 삭히겠지. 그러다 공주의 속삭임을 얼핏 들은 태자가 무엇이냐 물으면··· 날씨가 좋습니다, 하는 말로 뻔뻔하게 웃으며 주제를 돌리고. 태자도 초반엔 공주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다가, 나중엔 작게 궁시렁거리는 걸 다 알아듣고 있었을 거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저 계속 날씨가 좋다며 말을 돌리는 공주가 귀엽고 웃겨서 알아들었어도 계속 되물어보곤 했지.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한 태자는 공주를 제 앞에 끌어다 놓고 웃으며 물어. 날씨만?

54.
백기는 청아와의 재회를 어떻게 상상했을까. 보고싶었다면서 웃으며 반겨주는 청아, 싸늘한 분위기로 냉대하는 청아, 모두 아니라면··· 아예 무관심한, 고등학생 시절의 일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청아? 이별 직전, 청아가 그 도서관에 나타나지 않은 걸로 보아 자신에 대한 마음은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만, 아니 설령 남아있다 하더라도 6년 전의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백기는 그리웠다고, 왜 이제 왔냐면서 반겨주는 청아도 상상해봤을 거야. 빛바랜 추억 속에서, 작은 희망을 걸고 있었을지도 몰라. “나··· 기억해요?”

55.
바다에 놀러간 백기와 청아. 근처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청아를 보자마자 백기는 놀란 듯 그녀의 앞을 막아섰어. 같이 수영복을 고를 때에도 살짝 노출있는 디자인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다른 사람들이 보아서는 절대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야. ...집에 갈까? 심각한 표정의 백기가 당장이라도 자신를 안아들고 집으로 돌아갈 것처럼 말하자 황당할 뿐인 청아. 저희 오는 데에 3시간 걸렸거든요, 선배? 청아도 백기의 시선을 느끼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한 이후였지. 그렇지만 그의 말대로 정말 집에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수영복 위에 백기의 옷 하나를 걸치는 것으로 타협했을 거야.

56.
#offtrack1 분명 그때는 눈도 잘 못 마주쳤는데. 자신의 말 한마디에 안절부절 못하던 그 시절의 소년이, 어느새 완전히 성숙한 남자가 되었음을 깨닫는 청아. 학생 때도 마냥 크다고만 생각했던 키가 한 뼘은 더 자란 것만 같아 괜히 까치발을 들고 제 키와 비교해보곤 해. 더이상 소년이라 부를 수 없을만큼 성장한 그의 모습에 설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그는 수년간 잊을 수 없었던 상처를 안겨주었는데도. 저를 바라보는 백기의 눈빛이 얼마나 깊은지, 예전의 청아는 몰랐을 거야. 하지만 요즘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예전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착각이 일겠지. 둘만 남은 사무실은 어느새 연모고등학교의 도서관이 되고, 위엄스레 차려입은 제복은 6년 전의 낡고 헤진 교복으로 변해. 그러니까 이건, 백기는 모르는 청아만의 비밀.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남자에게 다시 심장이 뛴다는 사실은, 그녀에겐 감추고 싶은 수치였을테니. 어렸던 열여덟의 마음, 그리고 스물셋 현재의 마음까지 전부 백기에게 빼앗겨 버리고 단 하나 남은 청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지.

57.
백기는 청아의 체구가 특히 더 작은 편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 사실 청아의 키는 여성 평균 키를 훨씬 웃도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꼭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존재라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아마 백기는 청아가 저보다 아주 조금만 작았어도 똑같이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가끔 그 작은 몸이 오히려 저를 보살펴주고, 자신이 그것에 의지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본인 스스로도 어이없어 하겠지. 그렇지만 청아가 생각할 땐, 이건 아주 좋은 변화였어. 그 전까지 백기는 타인에게 좀처럼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거든. 그와 친한 동료인 고진도 백기는 본인이 하는 일의 10분의 1만 말한다고 할 정도로 그는 감정을 숨기고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는 것에 익숙했어. 청아는 그런 백기가 항상 걱정스러웠을 거야. 그가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만큼, 나도 그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래서 청아는 백기가 자신에게 서서히 의지하게 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첫번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지 않고 그저 안아주기. 힘든 일을 겪고 온 것 같으면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 그를 안아주었지. 그건 단순히 체온을 나누는 포옹 이상의 의미였어. 두번째, 언제나 그의 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세상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린다 하더라도 저만은 그의 곁에 남아 있겠다고··· 6년 전 고등학생 때처럼. 다들 백기에게 문제아라도 손가락질 했을 때 청아만을 그를 믿어주었으니까. 그 굳은 믿음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걸,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백기에게 말해주겠지. 청아의 간절함이 통한 건지, 백기는 이제 제법 그녀에게 제 마음을 털어놓곤 해.

58.
❥ 𝘿𝙚𝙖𝙧 𝙢𝙮 𝙅𝙪𝙥𝙞𝙩𝙚𝙧
백기 선배, 생일 축하해요♡ 작년 이맘때 쯤에도 펜을 잡고 생일 편지를 적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선배랑 함께 있으면 매 순간이 꿈만 같아서 빠르게 흘러가는 건가봐요. 누군가에게 벅차오를 만큼 큰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다시 되돌려줄 수 있다는 건, 인생에 몇 없을 행운 중 하나일 거예요. 선배가 저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라고 했듯이, 저 또한 선배는 저의 가장 큰 행운이에요.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선배. 선배는 항상 제가 용감한 소녀라고 했지만··· 사실 저는 생각보다 겁이 많아요. 선배를 다시 만났을 때에도 계속 피해 다니고, 어두운 기억 속에 혼자 틀어박혀 있었잖아요. 오해와 착각에 빠져있던 저를 만나러 와준 것도, 그곳에서 해방 시켜준 것도, 전부 선배예요. 저는 10년마다 운수가 나쁘다는 말, 한 적 있죠? 3살, 13살, 23살. 그래서 저는 23살이 되기가 두려웠어요. 또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봐, 어쩌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만큼의 상처를 입을까봐. 그때 나타난 게 선배예요. 솔직히 23살의 액운이 완전히 떠나갔다고 할 순 없겠죠. 수많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고, 그 속에서 아프게 운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아픔을 모두 잊을 만큼, 선배가 저에게 크나큰 행복을 안겨주어서, 더는 제 23살이 두렵지 않아요. 저를 용감한 소녀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선배였던 거예요. 아, 생일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요. 꽤 고민했어요. 매번 선배가 저에게 화려한 선물을 줘서··· 저도 그 마음에 꼭 보답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나름 여러 가지로 준비했어요! 선배가 생일 때마다 꾸준히 하는 말이 있는데, 제가 선배의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이에요. 기억해요? 선물 중 하나가 그 말과 조금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기대하진 말구요.  오늘은 선배만의 날이니까, 제가 선배의 모든 소원을 이뤄줄게요. 이런 말을 하면, 제가 곁에 있어서 모든 소원들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겠지만··· 저는 선배가 조금 더 욕심을 냈으면 좋겠어요. 가고 싶은 곳도, 해보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전부 말해줘요. 언제나 옆에 있을게요, 사랑해요.
❥ 𝙇𝙤𝙫𝙚, 𝙮𝙤𝙪𝙧 𝙀𝙖𝙧𝙩𝙝

59.
청아는 양쪽 눈 시력 차이가 심한 편이에요. 왼쪽 눈에 비해 오른쪽 눈의 시력이 훨씬 좋답니다. 짝눈이 된 이유는 경찰학교 2학년 때의 지옥임무 때문. 그때 오른쪽 골반에 큰 상처를 입고, 왼쪽 눈에 유리 파편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아직도 오른쪽 골반의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고, 왼쪽 눈의 시력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청아가 특수경찰로서 활동하는 것에 문제는 없답니다. 사실 스나이퍼에게 시력은 생명이지만··· 왼쪽 눈은 청아가 저격을 할 때 늘 감아왔던 눈이라 다행이었죠.

60.
외형을 바꿀 수 있는 적이 상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면···. 백기는 청아가 크게 다친 모습을 본 적 있는 터라 쉽게 해치지는 못할 것 같아. 그때의 일은 백기에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을테니까. 대신 몸을 단단히 결박해두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협박하겠지. 반면 청아는 백기가 아니란 것을 확신한 순간부터 거침 없어지지 않을까. 자신이 증오하는 부류의 인간인 범죄자가 백기를 따라했다는 것에 큰 분노를 품을 거 같아. 감히 그 사람을···. 싸늘하게 이볼을 풀라고 말하며 평소보다도 더 강하게 공격할 거야.

DAL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