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61.
특파팀 내에서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청아. 은근 기계치였던 그녀는 컴퓨터 앞에서 뚝딱거리다 파일을 날려버린 경험도 더러 있었을 거야.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속설을 굳게 믿는 듯 죄없는 컴퓨터를 몇 번 때려보는 건 덤. 주변 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저러니 고장나는 거 아닌가···’ 하고 얼굴에 쓰여있는 듯 했고. 하루는 사건 관련 파일을 프린트하다 설정된 개수를 넘어 끝없이 출력되는 프린터기 때문에 몹시 당황한 적도 있었어. 다급하게 중지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프린터기는 더 많은 종이를 쌓아나가며 열일 중이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계를 팡팡 두드려보았지만 말을 들을리가. 청아는 그 어느 때보다 당황한 표정으로 지휘관이 업무하는 곳으로 달려갔지. 선, 선배. 식은땀까지 흘리며 긴장된 얼굴을 한 그녀가, 특파서 내에서 백기를 ‘지휘관님’이 아닌 선배라고 부르다니. 백기는 확실히 무언가 큰 사건이 발생했다고 판단할 거야. 무슨 일이야? 덩달아 심각해져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백기. 프린터기가··· 고장났어요. 그 순간 백기의 머릿속에는 수만 개의 물음표가 떠다니겠지. 그것도 잠시, 중요한 임무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에도 침착했던 청아가, 프린터기가 고장나 사색이 되었다는 사실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 결국 백기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답답한 듯 그를 끌어당기는 청아. 선배, 지금 웃을 때가 아니에요! 지금도 계속 종이가 낭비되고 있다고요···. 청아의 성화에 못 이겨 같이 달려간 사무실에는 인쇄지가 뒤엉켜 난장판을 이루고 있을 거야. 그 현장의 범인은 자신이 오늘 하루 10그루의 나무는 죽였을 거라고 절망할테고. 백기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프린터기를 말끔히 고쳐놓겠지.

62.
청아의 어머니는 좋은 동료, 좋은 상사, 좋은 직원이었지만 딸에게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어. 자식보다는 자신의 커리어가 우선이었던 그녀. 그런 탓에 청아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어머니를 원망하진 않을 거야. 그렇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깊숙한 상처가 남아있던 건지, 청아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 청아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 이유도, 다 자란 스물셋 청아가 제 어머니만큼이나 본인의 일에 진심이었기 때문인데··· 그럼 나의 아이도 나처럼 자라게 될까 두려웠겠지. 언제 긴급한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특수경찰이라는 직업. 확실히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야. 어린 나이에 홀로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63.
백기청아의 캐치프레이즈는 ‘궤도 이탈 사랑’이라는 뜻의 Off Track Love. 치야의 사랑은 현재까지 나온 메인스토리 중 총 2번, 정상궤도를 벗어납니다. 첫번째는 열아홉 소년과 열여덟 소녀의 1부 연모 고등학교 시절, 두번째는 둘다 성인이 된 이후의 2부 특파팀 시절이죠. 1부 궤도 이탈은 금방 다시 청아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은 백기의 오만과, 백기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믿은 청아의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그들의 오만과 오해는 결국 둘을 5년이란 긴 시간동안 갈라놓게 만들어요. 지금까지 올렸던 치야의 이야기 중,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하면 대부분 이 시기입니다. 반면, 2부 궤도 이탈은 청아가 특파를 배신했다고 믿은 백기의 오해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고 믿은 청아의 오만에서 비롯되죠. 사실 저는 2부의 서사를 굉장히 애정하는 편인데, 가볍고 달달한 다른 치야의 이야기보다 훨씬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 될 예정인지라··· 보여드리기에 선뜻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요. 바쁜 일이 정리가 되고 나면, 서사를 더욱 철저히 정비한 후에 둘의 사랑위성이 추락을 맞는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나가려 합니다. 물론 끝없이 추락하는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사랑을 포함한 인간사에는 언제나 시련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주어진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그들은 더 완전하며 성숙해진 사랑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아무튼··· 백기와 청아의 관계는 굴곡이 꽤 많은 편이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1부 궤도 이탈과 2부 궤도 이탈 시기를 해시태그로 구분하고자 해요. 1부 궤도 이탈은 #offtrack1, 2부 궤도 이탈은 #offtrack2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64.
#offtrack2 이별의 다른 말은 사랑. 누가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였나요. 당신을 보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내 심장은 간절함으로 불타 온통 까맣게 그을렸는데. 사랑의 다른 말은 이별. 그러니 괜찮아요. 새까맣게 타버린 나의 심장에 당신이 입 맞춰주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므로.

65.
연모고를 떠난 이후, 백기가 귀를 뚫게 된 이유 중 하나엔 청아가 있지 않았을까.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단정한 소녀의 귀에 달려있던 조그마한 피어싱. 고등학생 시절, 백기는 꽤 오랜 시간 착용한 티가 나는 청아의 피어싱을 보며 의외라고 생각했을 거야. 귀 뚫었네. 속으로 더 많은 궁금증을 참아내며 나지막이 던진 한마디. 아, 보셨어요? 청아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귓볼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웃으며 답했어. 언제 뚫은 거야? 어릴 때요. 11살이었나···. 아주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준 거라 늘 끼고 있어요. 그 순간, 백기는 청아의 눈 속에 투명한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발견해. 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청아는 황급히 시선을 돌려버리고. 청아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백기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어. 청아가 매년 4월 11일에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도, 법조인이 되리라 마음 먹게 된 것도, 전부 그녀의 소중한 사람, 이모 때문일 테니까. 차오르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는지 어느덧 푹 숙여져 있는 청아의 고개. 백기는 용기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줘. ···잘 어울려, 정말 예뻐.

66.
처음으로 공개하는(!) 메인스토리 2부의 청아입니다. 정확히는 2부 초반 이후의 청아예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2부 초반의 청아는 1부와 동일하게 특파팀 소속의 오퍼레이터였지만, 특정 사건으로 인해 BLACK SWAN 소속이 됩니다. 사실 그 전에 백기와 헤어지기도 하고요. 그 이야기는 앞으로 천천히 풀어나가 볼게요.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림에서 주목해볼 만한 점은, 1부 내내 앞머리를 유지하던 청아가 BS의 ‘디케’가 된 이후 앞머리를 넘겼다는 사실이에요. 이마가 드러나며 가려져 있던 점이 보이게 되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죠. 특파팀, 그리고 백기를 떠나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청아. 그러나 하나 확실한 점은, 여전히 그녀만의 정의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67.
오늘은 백기와 청아의 동물 모에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먼저, 백기의 모에화는 늑대🐺 입니다.ᐟ 그동안 늑대 백기 일러가 꽤 많이 나왔는데, 하나같이 모두 찰떡이라고 생각해요. 고독하면서도 굳센 이미지, 평생 단 한 명의 반려만 바라본다는 점까지 정말 백기 그 자체···🥹 최근에 늑대는 부성애가 굉장히 강한 동물이라는 정보를 보아서 치야 2세를 한껏 기대 중이랍니다. 청아의 동물 모에화는 북극여우.ᐟ 추위를 잘 타는 북극여우라니 정말 아이러니하죠. 눈 EVOL을 가지고 있음에도 추위에 약한 청아의 모순적 특성을 잘 반영한 모에화라 좋아해요. 장르 내 캐릭터인 지운의 말대로, “누구보다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닐 수 없죠. 또 그와는 별개로, 백기는 하얗고 포슬포슬한 게 꼭 청아를 닮았다고 생각할 거예요.

68.
우리는 우리가 정의의 험로를 걷고 있음을 한탄치 않는다. 이 땅의 불의를 알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은폐된 추악함이 모습을 드러낼 때 진정한 도의를 부르짖을 수 있으므로. 우리의 사지가 뒤틀리고 뜯겨나갈지라도, 형체를 알 수 없이 터지고 흘러내린다 하여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신성한 정의의 것, 악의 제물이 될 수 없다. 信念, 그것은 핍박 받을수록 더욱 굳세어져 가는 것이니. 영원하라, 치기와 열정으로 점철된 빛나는 청춘이여. 우리의 총탄은 오직 정의를 위해 울린다.

69.
#offtrack2 청아의 이마 왼편에 숨은 작은 점. 앞머리에 가려진 이 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 백기 한 사람이 유일했어. 곤히 잠든 청아의 모습을 구경하다가 이마의 점을 발견하면, 괜히 그곳을 몇 번 쓸어보다 입 맞추겠지. 그러다 어느날 청아가 앞머리를 길러 넘기게 된다면. 그러니까, 이제는 옛 연인이 되어버린 그녀가 머리를 넘긴 채 다른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면. ‘백기 홀로 알던’ 청아의 점이 ‘모두와 공유’된 순간. 그건 단순히 점만을 의미하지 않겠지. 오롯이 제 소유라고 여겼던 청아가, 제 품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하는 광경이 겹쳐보일 거야. 저만이 알던 청아의 모습들을 전부 다른 사람도 알게 될 거라 생각하니 자연스레 주먹이 쥐어질테고. 그러나 청아를 떠나보낸 것도, 청아의 기억을 지운 것도 모두 자신이 한 일. 분노로 들끓던 주먹은 어느새 자책과 후회로 뒤덮여 맥없이 풀려버려.

70.
#redsnow 어두운 밤 온 몸에 피를 뒤덮은 채 쓰러진 늑대와, 눈 속에 파묻혀 얼어간 빨간망토. 그들의 나이는 고작 열일곱, 열여섯이었어요.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것들이 죽어나는 날, 겨울새들의 발걸음은 끊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죄의식은 없어요. 늑대와 빨간망토는 그들에게 그저 ‘거북함’으로 남았습니다.

https://kko.to/0z4k2Sz7in
늑대와 망토의 이야기를 대표하는 노래예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사를 '어른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로 들었어요. 실제로 원곡의 의도가 그러한 것이기도 했고요. 그러다 문득, 수십 살은 더 많을 어른들에게 죽임 당한 늑대와 빨간망토가 떠오릅니다. 늑대가 피 흘리다 죽어간 것도, 빨간망토가 얼어 죽어간 것도 단순 사고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명백한 어른들의 살인이었죠.

DALBOM